혼란 속 동남아에서 피어난 분쟁의 불씨

혼란스러운 세계 정세 속, 동남아시아에서 또 하나의 갈등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최근 태국과 캄보디아 사이의 국경 분쟁이 무력 충돌로 격화되며 외교적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습니다.

발단은 2025년 5월 28일, 양국 군이 총복(Chang Bok) 지역에서 벌인 약 10여 분간의 총격전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캄보디아 병사 1명이 사망했고, 이후 양국은 국경 병력 증강 및 주요 통로 폐쇄, 무역 보복 등 전방위적인 대응에 나섰습니다.

특히, 태국 내에서는 태국 패통탄 친나왓 총리와 훈센 전 캄보디아 총리 간의 통화 유출 파문이 겹치며 정국 불안이 심화되고 있고, 6월 28일에는 방콕 도심에서 총리 사퇴를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까지 예고돼 있어 갈등의 파급력은 더욱 커질 전망입니다.


총복 지역, 분쟁의 뿌리는 어디에?

이번 무력 충돌이 발생한 총복(Chang Bok) 지역은 태국 우본라차타니주와 캄보디아 프레아비헤아주 사이의 담레이크 산맥 일대입니다.

이 지역은 지형이 험준하고, 프랑스 식민지 시기 지도 해석의 이견이 누적된 국경선 ‘회색지대’로, 오랜 기간 분쟁이 이어져 왔습니다.

여기에 불법 무역, 마약·스캠 조직, 인신매매 루트 등이 얽혀 있어 단속 과정에서 군사 충돌로 이어지기 쉬운 구조입니다.

양국 모두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 민족주의 정서가 고조되고 있어, 이번 충돌이 의도치 않게 결속 수단으로 활용되는 분위기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정치 명문가들의 외교 전선 개입

이번 분쟁의 또 다른 이면에는 두 나라 정치 명문가의 등장과 재부상이라는 공통점이 존재합니다.

캄보디아와 태국 모두 현재 실권을 쥐고 있는 인물들이 오랜 정치 가문 출신이며, 국경 문제를 국내 정치에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먼저 캄보디아의 훈 센 가문거의 40년 가까이 국가를 실질적으로 지배해온 대표적인 정치 가문입니다.

캄보디아 전 총리 훈 센 (왼쪽) , 현 총리 훈 마넷 (오른쪽)

훈 센은 1985년부터 총리로 장기 집권했으며, 2023년 자신의 장남 훈 마넷에게 총리직을 물려주면서도 여전히 상원의장직을 통해 실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번 일본 중재 요청이나 군부 시찰 역시 훈 마넷 총리 대신 훈센 본인이 전면에 나서며 존재감을 과시한 대표적 사례입니다.

반면 태국의 친나왓 가문도 잘 알려진 정치 명문가입니다.

태국 전 총리 탁신 친나왓(왼쪽) , 현 총리 패통탄 친나왓(오른쪽)

패통탄 친나왓 총리는 전 총리 탁신 친나왓막내 딸이며, 2023년 총선에서 부친의 정치 유산을 이어받아 총리에 올랐습니다.

​탁신 친나왓 전 총리는 2006년 군부에 의해 실각한 뒤, 부패 및 권력 남용 혐의로 기소되면서 망명 생활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후 15년 넘게 해외에서 망명 생활을 이어오던 그는, 막내딸인 패통탄 친나왓이 총리에 오른 이듬해인 2023년 전격 귀국했습니다.

​귀국 직후 8년형을 선고받았지만, 불과 6개월 만에 국왕의 특사로 조건부 사면을 받아 조기 석방됐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최근 유출된 통화 내용에서도 군부를 비판하는 발언이 확인되며, 다시금 군-총리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상황입니다.

친나왓 가문과 군부의 오랜 앙금이 다시 불거지는 양상으로, 태국 정치권은 다시 한 번 중대한 분기점에 놓이게 됐습니다. 오랜 기간 해외 망명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이처럼 두 지도자 모두 강력한 정치 가문의 후계자이며, 내부 정치적 입지 강화를 위해 외교 이슈를 활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특히 국경 긴장 고조가 자국 내 보수층 결집이나 민족주의적 여론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 외교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전략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통화 유출 파문과 국내 정치 격랑

정국을 흔든 결정적 사건은 6월 15일 유출된 패통탄-훈센 간 17분 통화 녹취입니다.

이 통화에서 태국 군 수뇌부를 비판하는 발언훈센의 조언을 따르겠다는 취지의 발언이 담기며 보수 정당들과 군부의 격한 반발을 일으켰습니다.

이후 부엠자히타이(Bhumjaithai)당이 연정 탈퇴를 경고하고, 보수 정당인 UTN당은 총리 퇴진을 촉구하며 쿠데타설까지 거론되는 등 태국 정국은 대혼란에 빠졌습니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총리는 국경 현장 시찰, 훈센은 군부대 시찰 및 중재 외교 강화에 나서며 외교전과 내정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상황입니다.


갈등의 분수령 될 6월 28일 방콕 집회

이 모든 긴장의 정점에 자리한 사건은 6월 28일 예정된 방콕 대규모 시위입니다.

태국 시민들은 총리 통화 파문과 연정 균열 사태에 실망하며, 패통탄 총리의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를 예고했습니다.

시위는 승리기념탑 등 도심 주요 지역에서 벌어질 예정이며, 집회의 양상에 따라 정권의 존속 여부와 분쟁의 방향성이 갈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편, 캄보디아 측은 일본과의 중재 협상 외에도 ICJ 제소 가능성을 언급하며 외교전을 강화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국제사회 중재 여부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입니다.


외교 해법 찾을 수 있을까

태국-캄보디아 간 분쟁은 단순한 군사 충돌을 넘어, 영토 문제·내정 위기·외교 전략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위기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특히 양국 모두 내부 정치적 갈등이 깊은 가운데, 국경 갈등이 여론 수습용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실제로 양국 모두 국경 지역을 동시에 시찰하며 무력 충돌 자제 메시지를 전한 반면, 외교적 수싸움은 오히려 더욱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결국, 이번 사태는 국경선 분쟁이라는 지엽적 사건이 아니라 정치, 외교, 민족주의가 교차하는 복합적 위기이며, 외교적 해법을 통한 평화적 해결이 시급한 과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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